당신은 마이크레딧, 올크레딧, 크레딧뱅크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본인의 신용 등급을 신경써서 관리하고 있는가? 앞의 세 곳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용정보 관리 사이트인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소하게 느낄 것이다(각 사이트들은 제한된 횟수만큼 무료 신용 등급 조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무관심이 대변하듯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용 등급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방치(?)하고 있으며, 본인의 등급은 그럭저럭 우량할 것으로 막연히 과신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극소수의 사람들(상당한 재력가, 차상위 계층을 포함한 극빈층 또는 금융거래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 등)을 제외한 대다수의 신용정보가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고, 싫든 좋든 그 정보에 따른 객관화된 점수(스코어, Score)가 매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자금융의 선진국인 미국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애 주기에 따라 학자금 대출, 모기지론, 역모기지론 등을 평생에 걸쳐 이용하기 때문에 “스코어는 곧 돈이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신용(Score)이 좋은 사람이 금리나 대출한도 면에서 우대를 받고, 자신의 신용을 관리해 온 사람이 더 나은 혜택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합리적인 사회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파이코스코어(FICO score, 대부분의 미국 금융기관이 의사결정에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신용평점)에 의한 금융기관의 의사결정을 존중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소비자금융 발달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저변이 미성숙한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소비자금융이 제대로 정착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자료: Flicker - 401(K) 2012님 갤러리
소비자금융의 짧은 역사, 은행 문턱이 모두에게 높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소비자금융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평소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구입, 때로는 주택 구입에 이르기까지 은행을 비롯한 여러 금융기관들이 제공하는 각종 금융(Financing) 서비스를 곧잘 이용한다. 이렇게 가계 부문의 필요를 채워 주는 금융회사의 자금융통(주택금융 포함) 서비스를 통칭 소비자금융(消費者金融, Consumer Credit)이라고 부른다. 흔히 이용하는 대출, 신용카드 서비스에서부터 시중에 유통되는 개인 신용정보를 활용한 마케팅 사례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이 소비자금융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아직 소비자금융, 특히 스코어에 대한 인식이 낮은 터라, 은행에서의 대출 신청이 생각처럼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본인의 신용 등급 및 상태에 대한 고민은 하지도 않고 막연히 “은행 문턱이 여전히 높다”라며 불만스레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새 우리네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 소비자금융은 언제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며, 은행의 문턱은 실제로 여전히 높은 것일까?
사실 미국에서 본격적인 소비자금융이 시작된 것도 1980년경부터였으니 이제 30년 정도 경과된 셈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IMF 경제위기 이후에 비로소 은행이 소비자금융을 정식 비즈니스로 채택했으므로 이제 10년이 조금 넘은 정도밖에 안된다. 심지어 그 이전에는 은행이 개인에게 대출해 주는 것이 금기시되거나 특혜로 취급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과거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금융기관들은 조달(예금 유치)보다는 운용(대출, 투자)을 더욱 고민하는 상황이다. 가계부채 문제를 위한 정책적 고려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소비자금융이 기업금융 대비 단위 손실이 작고 대손율(리스크) 또한 낮은 우량 사업 부문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향후 그 영역을 더욱 넓힐 것으로 판단된다.
시중의 유동성도 풍부하고 소비자금융의 볼륨 확대 또한 기대되는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은행의 문턱은 '여전히' 높을까? 필자는 “은행 문턱을 낮춰 달라"는 말을 ”신용 등급에 관계없이 대출을 허용해 달라“는 말로 이해한다. 소비자금융은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대출 신청 건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통계적인 분석의 결과로 승인점(cut-off line)을 결정하기 때문에, 승인점 이하 등급의 고객에게 대출을 허용하는 경우 그 즉시 급격하게 대손율이 올라간다. 이는 곧 은행의 부실화와 직결된다. 금융은 태생적으로 라이센스 산업, 진입 장벽이 높은 산업인데 이는 그만큼 경제의 중요한 기간(基幹) 산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민금융이라는 명목으로 출시되는 일부 정책 상품들을 제외하고는, 정해진 문턱을 쉬이 낮춰 준다는 것은 대손율 관리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대부업과 사채시장으로 내몰리는 저신용자들, P2P금융이 희망이 되어 줄 수 있을지
그렇다면 저신용자들은 대부업체나 사채시장 만을 전전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대안은 진정 없는 것인가? 최근 일본의 야쿠시뷰는 영국의 조파(Zopa), 미국의 렌딩클럽(Lending Club), 한국의 머니옥션(Money Auction)을 해외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의 성공 사례로 보도했다.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이하 P2P금융)이란 불특정 다수의 개인이 특정 개인 또는 회사에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나 원금 보장이 안될 확률이 높아 시장 확대가 빠르게 진행되지는 못하고 있다. 개인과 개인을 직접 연결하기 때문에 Peer to Peer 금융(Peer-to-peer lending, P2P lending)이라 불리기도 한다.
국내 P2P금융은 주로 저소득층, 저신용자 등을 대상으로 소액 대출 업무에 집중하면서 비교적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최근 들어 금융권 문턱이 높아지면서 기존 저축은행, 캐피털 등에서 연 30%대의 대출 상품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금리를 낮추기 위해 환승해 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해외 P2P금융 고객층의 경우 최고 신용 등급에서 최저 신용 등급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며, 기존 제도권 금융기관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금리 수준이 제시되는 것에 비해 국내 여건은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 고객층은 제도권 금융기관들을 이용하기 어려운 대부업, 저축은행의 주요 고객층과 거의 겹친다고 볼 수 있다.
자료 : 크라우드산업연구소 정리
그렇다면 P2P금융은 소비자금융 시장에서의 향후 포지셔닝이 어떻게 될까? 국내의 경우 아직까지는 P2P금융 산업이 초창기이고 대상 고객 Segmentation이 제1금융권과 겹치지 않고 있지만, 향후 P2P금융 뿐 아니라 기업금융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대출 및 투자 활동이 점차 확대되면서 개인 및 기업 대출 시장을 놓고 은행을 비롯한 전통적인 금융기관과 더불어 경쟁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주로 예금에 투자하던 사람들은 P2P금융에 투자함으로써 은행 예금 대비 더 나은 수익률을 추구하게 될 수도 있다.
신뢰 구축의 열쇠는 결국 철저한 위험관리
영국 P2P금융 서비스 Zopa의 CEO 자일스 앤드류는 P2P금융의 성공요인을 다음과 같이 꼽는다.
“신용위험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결과로 투자자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신뢰 구축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기존 제도권 소비자금융기관들의 대출 승인 절차와 비교해 보면 P2P금융은 사기 대출(Fraud) 가능성이 매우 높은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P2P금융이 서민금융, 미소금융에 머물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절한 위험관리와 그에 따른 수익성 제고가 핵심적이다. 결국 통계적 확률에 기반한 유연한 운영, 프로세스 자동화 등의 안전장치 마련 등 섬세한 제반 설계가 필수적이며 이는 곧 사업성과 직결된다.
P2P금융이 지금과 같이 서민금융의 일부분을 담당해내는 수준을 넘어 기존 제도권 소비자금융이 아우르고 있는 영역까지 침투해서 한 축을 이룰 만큼 성장하게 될 경우, 미래에는 우리가 주택을 구입할 때 이용하는 모기지론도 P2P금융을 통해 받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흥미진진한 상상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