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7일 월요일

돈에 대한 감각 기르기(0) - 프롤로그, 왜 돈을 공부해야 하는가?

자식의 성공은 ‘할아버지의 재력’이 좌우한다는 말이 유행하고, 주변을 보면 부자만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내 통장 잔고는 이 모양 이 꼴일까?

또 한편으론 신문을 보면 소득 하위 10%가 중산층이 되려면 무려 5세대(150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나는 중산층인가?

각종 통계자료들을 보면 부자의 숫자는 확실히 늘어나고 있다. 

매년 주요 금융회사에서 발표하는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보유한 부자수가 거의 28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거의 0.5% 정도의 사람들이 총 금융자산의 약 18%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형국인데 28만명, 특히 서울에만 13만명 정도가 있다고 하니 부자가 많긴 많다. 서울 인구가 1,000만이 조금 안되니 서울 기준으로는 1%가 넘는 사람들이 부자다. 잠깐, 그런데 100명 중에 1~2명이 그 정도 부자라니.. 이게 정말 많은 것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소득 하위 10%가 중산층이 되려면 5세대(약 150년)이 걸린다는데, 소득 하위 10%의  소득을 살펴보면 시장소득 기준으로  2018년 2/4분기 86만원 정도이다(실제 처분가능 소득은 약 67만원). 
물론 재산상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지표는 아니지만, 어쨌든 10명 중에 한명은 한달에 86만원 밖에 못 번다는 소리다. 소득분위 기준으로 평균 값을 봐도 453만원, 2인 이상 가구 기준이라는 점에서 우리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결코 높다고 볼수는 없는 수준이다.

그러면 이게 무슨 소린가? 결국 잘사는 사람은 더욱 잘살게 되고 없는 사람은 계속 없는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양극화의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결한다고 쉽게 나아지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 과거 개발시대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처음에는 어렵게 시작해도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가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연 3% GDP 성장율도 달성이 어렵고,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인구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출산율이 2/4분기 기준으로 급기야 도시국가 수준인 0명대(0.97명)로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2017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인구의 14%가 65세 이상 노인으로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고 하니.. 국가가 아무리 복지정책을 세게 써도 쉽게 반전되기 어려울 것 같다.

여기서 양극화 문제나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서 양극화에 대처하는 해법을 언급하고자 한다. 즉, 잠깐 방심하면 좁은 중산층의 카테고리에서 넓고 깊은 소득분위 하위 단계로 추락할 수 있는 냉혹한 현실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몇회에 걸쳐 이야기 해보려 한다.

잠깐 맛보기로 예를 들면,


위의 통계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필자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2007년) 월평균 실질 가구소득은 349만원쯤 되었던 것 같다. 그때 필자의 사회생활 첫 차 내지는 대부분의 회사 프레쉬 맨들의 첫 차로서 드림 카는 당시 가격으로 약 1,500만원 정도였던 아반떼 HD 였던 것 같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주변을 보면 잘은 모르겠지만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엔트리급 외제차도 많이 타는 거 같고, 최소 소나타급은 보는 것 같다. 2016년 기준 월평균 실질 가구소득은 368만원이었는데, 소나타 LF가격은 2,500만원 정도다. 외제차는 3-4천만원도 더 할거다.

왜 이럴까? 주변에 100명 중에 1명 또는 100명 중에 0.5명에 해당하는 친구들이 늘어난 건가? 그럴리가 없다.

언론과 광고에서는 좋은 차, 멋진 분위기, YOLO, 일점호화 등등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우리는 SNS를 통해서 타인과 수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각종 금융기법 들은 더욱 쉽게 소비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 준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일까?

돈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관심과 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돈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과 욕심을 넘어 앞으로는 나와 가족을 지키는 현실에 대한 문제가 될 것이며, 이제 단순한 금융교육(Financial Education)이 필요한 수준을 넘는 구체적인 금융구사능력(Financial Literacy)을 끌어올리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다. 금융구사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훈련과 교훈은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다. 대부분 사회에 나와서 실제 터득해야 하는데 많은 부분 듣고 흘리거나, 교훈을 얻어도 그 효력이 금방 소멸된다.

앞으로 금융구사능력을 끌어 올릴 있는 지식과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영화 '명량'과 소설 '칼의 노래'에서 배운 비즈니스 전략

2014년에 무려 1,700만명이 본 영화인 '명량'을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당시 영화 속 명대사를 따라한 건배사들이 무수히 많이 나왔고(이를 테면 "신에게는 아직 12병의 술이 남아있습니다.." 류의..), 나도 그냥 흥행한 영화이겠거니..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순신 장군의 전투를 다룬 영화이겠거니 하고 넘겼었다.

그렇게 기억의 저편으로 잊혀졌던 이 영화를 최근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아무 생각없이 플레이 시켰는데(최근 선이 굵은 영화를 즐겨보다 보니 추천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그동안 이순신 장군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반성과 한편으로는 이렇게 훌륭한(뛰어난) 분이 우리 조상 중에 계셨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허겁지겁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자료들을 더 보고 싶었고, 그래서 서점에서 바로 김훈 작가님의 "칼의 노래"를 구입하여 순식간에 완독했다.

명량해전 뿐만 아니라 이후에 이순신 장군님의 마지막 전투까지 자세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묘사한 "칼의 노래"는 장군의 일생 후반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해 주었고, 이후 다시 한번 2번째로 영화 명량을 보니 얻는 것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모르는 그 이순신 장군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위인전기, 교과서 등 각종 매체에서 접하면서 커 왔던 것에 기인하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어렸을 때 경험이나 배경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접한 이순신 장군은 그저 막연히 훌륭한 위인으로 기억되어 디테일이 망각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 이번에 접하게 된 이순신 장군의 전투는 냉혹한 비즈니스 환경과 오버랩되며 여러가지 시사점을 남겨주었다.

일단 12척(13척)의 배와 130여척(330여척)의 배가 맞붙어 이긴 명량해전을 기업간 경쟁에 비유하자면 글로벌 기업과 국내 중소기업이 싸운 격인데.. 거의 불가능한 이러한 싸움인데 이것을 승리로 이끈 부분이 너무나 놀라웠고, 누구말대로 거의 불가사의 수준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이순신 장군은 이러한 결과는 특히 아래 세가지 부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이순신 장군은 정보전에 능하였다. 그의 근본적인 원칙은 "이겨놓고 싸운다" 이었다. 현대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정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있었고, 그래서 늘 정찰병을 두고 정보에 근거해서 의사결정을 내렸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숫적으로도 우위에 서서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전투에 임했다(전체 전선의 숫자는 열위이더라도 적의 적은 숫자의 전선들을 집중 타격하여 전의를 상실 시키는 방식이었다). 다만 명량해전 같은 경우에는 그 자신도 "천운이었다"고 할 정도로 위험을 감수한 전투였다.

둘째, 이순신 장군은 엄격한 관리자였다. 백성과 군사를 아꼈으나 참혹했던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에도 엄한 군율을 적용하였다. 자칫 동정과 측은함이 앞서게 되면 안그래도 열세인 당시 상황에서 군대의 사기는 순식간에 곤두박칠 친다는 것을 알고 항시 엄격한 군율을 적용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본인에 대한 적용도 예외가 없었으며,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이며 실질적으로 남쪽을 거의 지휘하고 있던 그 조차도 임금의 부당한 명령에도 복종하고 고초를 당하고 백의종군하는 수모를 겪었다.

셋째, 이순신 장군은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명량에도 나오듯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대장선이 앞장서서 적선들을 맞서 싸웠으며, 이는 부하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 "칼의 노래"는 역사소설이라기 보다 이순신 장군의 가상고백에 가깝다. 실제로 왜란 당시 그의 심정은 아마도 짐작컨대 임금의 손에 죽는 다던지, 병에 걸려 죽는 다던지 하는 무의미함은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량해전에서 철수하는 왜군을 상대로 전쟁을 끝내는 마지막 전투를 하고 돌아가신 것은 무인 이순신에게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비즈니스 맨들은 다른 의미의 전쟁을 각자 치르고 있다. 이 각자의 전투를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를 찾기 위해 이순신 장군의 교훈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면 어떨까?